※ 본 리뷰는 <어스>와 <겟 아웃>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애들레이드는 산타 크루즈 해변의 거울방에 우연히 들어가 거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도플갱어를 마주했다. 그녀는 이 사건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지만 치료했고, 성인이 된 지금, 남편인 게이브 윌슨과 딸 조라, 아들 제이슨을 둔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 휴가를 온 윌슨 가족은 산타 크루즈 해변으로 놀러 가지만, 애들레이드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로 이를 탐탁지 않아 한다. 친구인 타일러 가족과 보낸 낮엔 어린 시절에 본 광신도가 응급차에 실려가고 날아온 원반이 깔아놓은 돗자리에 정확히 포개지는 등 수상한 기운이 감돈다. 별장으로 돌아온 그날 밤, 손을 마주 잡은 사인방이 침입하는데, 그들은 윌슨 가족을 죽이려 하는 도플갱어 가족이다. 겨우 별장에서 탈출한 윌슨 가족은 타일러 가족 집으로 가 그들의 도플갱어를 처치한 후, 이 사건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업계 최고들이 흔히들 하는 말.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본작을 이런 시쳇말에 기댄 작품으로 생각했다면 아쉽게도 오산이다. 자기 자신조차 속여야 하는 치열한 두뇌 싸움 대신에 조던 필이 들고 온 건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같은' 사람에서 같은 '사람'으로(조금더 정확히는 '사람이 같다'에서 '사람이니 같다'로.). 손을 맞잡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600만 명을 위한 자리바꿈이자, 한때 이민자들의 나라였던 조국을 향한 경고이다.
반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자. 조던 필이 배우들에게 참고하라 건네준 영화 중 <식스 센스>가 그러하듯, 엔딩 직전에 순순히 밝혀지는 반전은 동력을 위한 반전이 아닌 전복을 위한 반전이다(이는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작품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기 때문에 메타적이기도 하다.). 본작의 많은 요소가 그렇듯이 그 자체로(청각적이든 시각적이든 감각적으로) 소름 끼치는 지점이자, 작품을 관통하는 의미를 생성하는 지점이다. 조던 필이 지금까지 펼쳐온 작품세계가 적어도 호러 팬들에겐 약점으로 다가올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강약을 위한 유머는 그렇다 치더라도 끊임없이 상징에 관한 게임을 펼치게 해 말초적인 감정을 희석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조던 필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걸 수 있는 장기이다.

좋은 반전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단순한 충격의 양보다 그러한 시점 전환을 통해 이전에 간과했던 것을 보게 만드는 '통찰'을 제시하는 반전을 좋은 반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본작의 반전은 엔딩 직전에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통찰을 곧바로 현실에 투사한다. 그 투사체는 도플갱어다. 결국 그들은 누구인가? 같은 사람이지만, 결정권을 쥐지 못한 사람들. 미국 내 여러 집단을 끄집어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불법 이민자들이 떠오른다(인디언이나 유대인, 혹은 Hands Across America로 연을 맺은 아프리카인을 대입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미국의 영토 안에서 그 법에 영향을 받지만,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개입할 수 없는 사람들. 영화 속 대사를 다시금 떠올린다. 애들레이드의 도플갱어인 레드가 말한다. "우린 미국인이야." 그전에 아들 제이슨이 한 말도 떠올린다. "우리잖아"("It's us."). 제목으로 강조하듯, US라는 두 철자가 내포하는 두 가지 의미가 해변의 돗자리와 원반이 그러하듯 포개어진다.
이민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입장이 끊임없이 비판받는 이유는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에들레이드가 레드를 마주한 거울방, 주술사의 숲이 인디언 테마로 꾸며져 있다가 현재엔 멀린의 숲으로 뒤바뀐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영국 청교도 이민자들이 결국 북아메리카에 미국이란 국가를 세웠고, 그 후 아메리칸 드림에 젖은 전 세계의 이방인들이 미국을 지금의 초대강국으로 길러냈다. 또한 애들레이드의 유년 시절을 그린 1980년대에 레이건이 불법 이민자 대사면을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사건은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몰락한 중산층들의 현 상황, 러스트 벨트를 촉발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또 MK 울트라 같은 세뇌 실험으로 도플갱어를 조작해 지상인을 통제하려는 극 중 설정은 이민자에 대한 위험을 조장해 러스트 벨트를 투표장으로 끌고 나온 트럼프 캠프의 모습을 기묘하게 비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이 희한한 도플갱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현실과 쌍둥이이다(일란성은 아닐지 몰라도.).

극의 진행 중에 의외의 지점이라 하면 도플갱어들이 단순히 윌슨 가족에게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조라가 자신의 도플갱어와 추격전을 벌일 때 차 주인이 죽게 됨), 타일러 가족도 도플갱어의 습격을 받는다는 점(단순한 인종문제를 다루지 않음을 암시)이다. 이 지점에서 애들레이드의 사적 경험은 급하게 동력을 잃고, 호러 장르의 색채도 옅어진다. 하지만 이부 분이야말로 도플갱어를 단순한 거울상으로 읽어선 안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 도플갱어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만큼이나 극 중에서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류(후반부에 밝혀지는 그들의 모습은 머신 러닝이 작동방식 - 반복을 통한 규칙 찾기와 유사하다. 이들이 화합의 의미를 가진 Hands Across America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로 지상으로 올라와서 하는 행동이 흥미롭게 표현된다. 키티 타일러의 도플갱어가 원본이 수술한 부분을 스스로 웃으며 손본다든지 말이다. 포스터가 보여주듯, 표정의 내부와 외부가 불일치를 보이는 상황이다( <겟 아웃>에서 가정부 조지나가 보여준 웃는 표정에 눈물을 글썽인 것처럼, 조던 필은 일부러 모순된 지점을 포착하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다양한 상징들이 시각적으로, 기능적으로 의도를 가진 채 모순되게 배치된 지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이자 걸림돌이다. Hands Across America에서 보여준 인간 장벽은 오히려 결말엔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을 연상시키며 미국 자신의 목을 죄는 형상이 된다. 그 자체로 대칭형인 가위는 주로 자르는, 즉 하나인 것을 나누는 데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극 중에선 마치 칼처럼 찌르는 데 사용된다(실제 가위가 본 목적으로 사용되는 때는 레드가 과거를 회상하며 사람 모습을 오릴 때뿐이다.). 예레미야 11장 11절도 대칭형인 모습으로 주로 사용되지, 그 내용은 극 중에서 언급되지도 않고 본작과 그리 연관 있는 내용도 아니다. 이처럼 다양하게 흩뿌려진 상징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외부와 내부가 끊임없이 뒤섞여 뚜렷이 영화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면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사용한 반전 때문에 결말은 진실 공방으로 흐르게 되고, 어떤 관객들에겐 이 반전이 터닝포인트가 아닌 허무함으로 남은 마침표가 될 수 있다. 별장에 놓여있던 거미 인형과 그 앞을 기어오르는 실제 거미가 암시한 이 반전은 사회적 메세지와 내부 설정 사이에 미묘한 간극을 남긴다.

사회 최소 단위인 가족을 중심으로 끌고 온 본작은 처절한 생존극에서 실패한 복수극으로 반전을 꾀한다. 따라서 공포는 곧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대체할거라 믿는, 고향을 등진 이민자들에 대한 배부른 시기로 변모한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무엇으로 US라는 집단을 형성해왔는가? 인디언과 아프리칸-아메리칸에게 보여준 배척과 배제의 언어인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상으로 뭉친 화합과 포함의 언어인가? 지금까지 호러를 책임졌던 극단적 타자화는 가면을 벗고 거울을 들고 와 우리 자신을 비춘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번엔 거울상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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