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일즈 모랄레스는 극성인 경찰 아빠 때문에 입학한 엘리트 학교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힘겨운 일상에서 유일한 낙은 아빠와 사이가 멀어진 삼촌과 그라피티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지하철역 깊숙이 그라피티를 그리던 마일즈는 수상한 거미에게 물리게 되고, 스파이더맨(피터 파커)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된다. 새로 생긴 능력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 다시 지하철역을 찾은 마일즈는 다차원 포탈을 열려는 킹핀과 이를 막으려는 스파이더맨의 결투에 휘말리게 된다. 그린 고블린의 실수로 피터 파커는 포탈에 노출되어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 센스를 지닌 이들이 이 세계로 불려오게 되고, 피터 파커는 무너진 잔해에서 킹핀에 의해 사망한다. 마일즈는 포탈을 정지해달라는 피터 파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과 힘을 합쳐야 하지만, 갓 생긴 능력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가족 문제도 벌어지며 다른 스파이더맨들에게서 소외된다.
들어가며
2010년, 스파이더맨 전담 작가인 댄 슬롯은 게임 <스파이더맨: 섀터드 디멘션즈>에서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을 주축으로 하는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를 처음으로 탐구한다. 2014년, 그는 돌아온 피터 파커와 함께 마블 코믹스의 메인 이벤트로 종전에 탐구한 '스파이더-버스'를 가져온다. 스트라진스키에 의해 재정립된 스파이더맨의 기원인 거미 토템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평행우주 스파이더맨들과 매력적인 악역 인헤리터스가 맞붙은 (근래 가장 호평받은) 마블 코믹스의 대형 이벤트였다. 그리고 2018년, 최근 들어 아쉬운 작품들을 만들어온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스파이더-버스를 소재로 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을 공개한다.
<전반의 내용은 마일즈의 코스튬(그라피티, 검은색)이 어떻게 마일즈의 특성을 반영하는 지 설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볼 수도 있다.>
시기와 매체가 엮일 때
슈퍼히어로 영화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그렇다 보니 모두 새로운 매력을 주목할 수밖에 없고, 각기 새로운 기록을 보유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2017년에 <원더우먼>이 (마블이 <캡틴 마블>로 눈독 들이던) '최초의 여성 단독 히어로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고, 2018년에 <블랙팬서>는 '최초의 유색인종 단독 히어로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볼 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갈 구석은 거의 없다. 마블/DC 코믹스 기반의 애니메이션은 <빅 히어로>가 최초이고(비록 원작처럼 단발성으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다인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은 <어벤져스> 이전에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엑스맨> 프랜차이즈가 존재한다.
하지만 평행우주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블 본가보다 우위를 점유한다(물론 <앤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을 필두로 마블 본가는 차근차근 유니버스에서 멀티버스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실사 영화에서 평행우주가 얼마나 흥미롭게 활용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본다. 어쩌면 한 배우의 원맨쇼가 될 수도 있고, 컴퓨터 그래픽의 남용으로 언캐니 벨리만 잔뜩 유발하고 말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매체로 선택함으로써, 평행세계의 개성을 직관적으로 부여하고 이물감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피터 B. 파커와 근래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스파이더 그웬을 제외한 나머지 스파이더맨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선택되었을 확률이 높다(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특히 페니 파커는 일본 2D 애니메이션의 표현 양식을 끌어들여 만들어냈다(컬러톤을 최소화하고, 옆모습을 표현할 때 눈크기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든지.). 또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생기는 스포일러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작품 속 본 세계관에서 피터 파커 역을 크리스 파인이 맡은 것도 그렇고, 특히 악역에서 옥토퍼스는 재미있는 반전을 선사했다. 또 시각적으로 본래의 개성을 더욱 강화하거나(킹핀), 다른 모습을 극대화하거나(그린 고블린), 재미있게 변용할 수 있었다(옥토퍼스의 고무호스 팔).
< 페니파커의 단순화된 명암, 피터 포커와 느와르의 망점>
그럼에도 단일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마일즈 모랄레스의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블이 일련의 영화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스토리라인을 이어나가는 유니버스를 성공시킴에 따라 각 영화사마다 각자의 유니버스를 만들려 노력하는데, 이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연 각 단일 작품으로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DC는 원작의 주요 이벤트들을 영화 내적인 동기를 통해 전개하지 못해 원작 팬도, 영화로 처음 접하는 이들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왔다('슈퍼맨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스파이더맨 3>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막을 내린 것도 소니 측에서 무조건 베놈을 집어넣으라는 압박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본작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염려했다. 애초에 '스파이더-버스' 이벤트가 상당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했고, 또 캐릭터들이 마구잡이로 출현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본작은 원작의 거미 토템 설정을 가져오지 않고 매력적인 동기를 독자적으로 마련한다 - 가족을 되찾고자 하는 킹핀의 비틀린 욕망이 다차원 포탈을 열게 하고, 그린 고블린의 실수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이 소환된다. 그리고 이 세계에 계속 있으면, 세포가 재생하지 않음으로 하루빨리 포탈을 열어 본래 속한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 평행세계를 가장 깔끔하게 등장시키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제시한다. 그 속에서 자식을 사랑하지만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에 강압적인 아버지 이야기와 자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사춘기의 마일즈 이야기가 균형 있게 들어찬다.
또 평행우주를 통해 스파이더맨이 되는 일종의 의례적 과정(소중한 이의 상실이 각성의 과정이 되는 것)을 추출하고, 후속작에서 더욱 방대해질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어, 평행우주를 단순한 눈요깃거리로만 사용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피터 B. 파커가 우울감을 떨쳐내고 다시금 메리 제인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는 에필로그는 소소한 감동을 안긴다. 본 세계의 원조 스파이더맨은 결국 죽지만, 다른 스파이더맨들에게 일종의 가능성(한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력 - 크레딧에 나오는 캐롤처럼 - 으로 남았고, 또 배트케이브 부럽지 않은 아지트를 가졌기 때문에)으로 남기에 이 평행우주 이야기가 더욱 특별해진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과학계에서 평행우주라는 가설이 등장한 것이 그러했듯, 선택의 갈림길이 모두 내가 가보지 않았을 뿐 존재하는 세계라는 상상은 뭔간 삶을 더욱 열심히 살게 고취하는 느낌이 있다.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본 세계의 피터 파커는 마일즈의 롤모델이었고 그 시기의 혼란을 적극적으로 도우려 했다.>
전매특허가 되어 버릴 개성
본작을 기억에 각인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과감한 시각적 표현일 것이다. 위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되는 시각적 표현이 존재한다. 이를 무던하게 말하면, 만화적 표현을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끌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망점(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을 인쇄물로 찍으면서 스크린을 통해 생긴 미세한 점)을 가시화하고 CMYK 각 잉크를 살짝 어긋나게 표현했다. 게임계에서는 카툰 렌더링이라 부리는, 즉 경계선을 보다 명확한 선으로 처리하는 방식도 차용하고 있다. 또 말풍선을 이용해 마일즈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칸을 시각적 연속성을 부여해 사용한 점도 들 수 있다.
이런 점은 단순한 시각적 개성을 넘어서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을 소개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만화책을 매개물로 그들의 배경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캐릭터가 자신의 과거를 구전으로 소개하거나, 뜬금없이 플래쉬백이 등판하는 것보다 훨씬 느낌 있고 재치 넘치는 방식이다. 본작은 카툰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 인해 적어도 애니메이션에서는 독보적인 시각적 개성을 확보한 셈이다. 이정도는 되어야 다음의 영화를 통해 세계관을 확대할 기반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앵글도 비정형적인(캐릭터 설정보다는 분위기에 집중하는) 편이고, 편집을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해 뮤직비디오의 느낌을 주는 편.>
나가며
자칫 무모해 보였던 소니의 스파이더-버스가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웬과 마일즈에 초점을 맞춘다는 후속작의 개략적인 계획을 알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평행우주의 다채로운 개성과 이들 간의 호흡이 본 시리즈를 이끄는 매력이 되겠지만, 이 또한 역시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가진 메인 플롯을 가져야 이야기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보다 슈퍼히어로 영화 시장에 새로운 차원(애니메이션과 평행우주)을 보탠 지점이 무척이나 흐뭇하다. 슈퍼히어로 영화 시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개성을 찾아야 레드 오션 속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무척이나 영리하게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서 그 가능성을 엿봤고, 보란 듯이 성공해냈다.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의 개성이 더욱 깊게 스토리에 개입하는 것도 후속작에서 기대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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